새벽에 영화를 보고 나서 피곤함도 잊은 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저도 주말에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오면서 딱 그 상태였습니다. 169분짜리 영화인데, 단 한 번도 시계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두고 "어렵다"는 분들도 있고, "소름 돋는다"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두 말이 동시에 맞다고 생각합니다.황폐한 지구와 웜홀, 이 이야기의 출발점영화의 배경은 2067년입니다. 지구 전체를 덮는 황사와 극심한 사막화로 인해 옥수수 외에는 재배 가능한 작물이 없는 세계입니다. 식량난이 심각해지자 사람들은 우주 탐사에 관심을 끊었고, 결국 NASA마저 해체 수순을 밟게 됩니다. 이 설정이 저는 꽤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기후변화와 토양 황폐..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기대치를 너무 높게 쌓아 올렸습니다. 반차까지 내고 달려간 CGV에서 팝콘 라지를 두 손에 들고 자리에 앉던 그 순간, 이미 머릿속 시뮬레이션은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든 감정은 "예상보다 평범했다"는 것이었습니다. MCU 10년의 마무리가 이 정도면 충분하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조금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습니다.타노스의 죽음과 시간여행 작전 — 서사 구조를 냉정하게 뜯어보면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먼저 걸렸던 부분은 타노스의 첫 번째 죽음이었습니다. 인피니티 워(Infinity War)에서 전 우주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 빌런이, 엔드게임 초반 15분 만에 토르의 스톰브레이..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토이스토리4를 보러 가면서 걱정이 앞섰습니다. 3편이 워낙 완벽한 마무리였기 때문에, 속편이 그걸 넘어설 수 있을지 의심했거든요. 그런데 극장 문을 나서며 든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괜한 걱정을 했다."25년 만에 다시 만난 우디, 그 서사 구조는 어떻게 짜여 있나토이스토리4는 2019년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제작하고 조시 쿨리 감독이 연출한 작품입니다. 전편인 3편으로부터 9년 만에 돌아온 시퀄입니다. 시퀄(sequel)이란 기존 작품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이어받아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후속편을 의미합니다.저는 개봉 전에 1편부터 3편까지 후다닥 몰아봤습니다. 안 보고 4편을 보면 뭔가 놓칠 것 같다는 강박이 있었거든요. 덕분에 1편이 1995년 작품이라는 사실을 다시..
넷플릭스에서 액션 영화 하나 틀어놓고 싶은데,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런 날이 있었는데, 그때 반쯤 기대 없이 틀었던 영화가 바로 익스트랙션이었습니다. 크리스 헴스워스 팬으로서 그의 출연만으로도 볼 이유는 충분했지만, 솔직히 처음엔 '또 비슷한 용병 영화겠지'라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롱테이크 액션이 왜 이렇게 강렬할까익스트랙션에서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단연 롱테이크 액션 시퀀스입니다. 롱테이크(Long Take)란 편집 없이 카메라가 연속으로 오랜 시간 촬영하는 기법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인 액션 영화가 빠른 편집으로 박진감을 만든다면, 롱테이크는 그 반대로 한 호흡 안에 모든 긴장감을 밀어 넣는 방식입니다. 이 영..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는데, 그렇다고 멍하니 있기도 싫은 밤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날에 레드 노티스를 골랐습니다. 아는 얼굴이 셋이나 포스터에 보이길래 그냥 틀었는데, 생각보다 끝까지 보게 됐습니다.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액션 코미디 영화로, 제작비 2억 달러가 투입된 작품입니다.세 배우의 케미스트리, 그리고 영화의 구조레드 노티스는 인터폴(INTERPOL)이 발행하는 최고 등급 국제 수배령을 제목으로 삼은 영화입니다. 여기서 인터폴 수배령이란 국제형사경찰기구가 회원국에 수배 대상자 정보를 공유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으로, 레드 노티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긴급한 등급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가 하이스트 무비 장르를 표방한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이스트 무비(Heis..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가 있습니다. 2016년 개봉한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입니다. 솔직히 저도 "언젠간 봐야지" 하며 버킷리스트에 넣어두고 몇 년을 미뤘습니다. 3개월간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나서야 드디어 제대로 앉아서 볼 수 있었는데, 미뤘던 시간이 아까울 만큼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줄거리로 보는 라라랜드, 어떤 영화인가라라랜드는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의 사랑과 성장을 사계절에 걸쳐 그린 작품입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러닝타임은 128분입니다. 영화는 LA 고속도로 위에서 시작합니다. 극심한 교통체증 속에 갇힌 운전자들이 차 밖으로 나와 노래하고 춤을 추는 오프닝 시퀀스 'Anothe..
추리 영화는 범인을 끝까지 숨겨야 재밌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나이브스 아웃은 개봉한 지 40분도 안 돼서 범인과 트릭을 다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더 재밌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극장을 나오면서 올해 본 영화 중 두 번째로 좋았다고 확신했습니다. 추리물의 공식을 의도적으로 깬 설계일반적으로 추리물, 즉 후더닛(whodunit) 장르는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틀어쥐고 가는 방식으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여기서 후더닛이란 "Who done it(누가 했나)"의 줄임말로, 독자나 관객이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 자체가 핵심인 서사 구조를 의미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이 형식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라이언 존슨 감독은 이 공식을 정면으로 뒤집었습니다. ..
화성에 혼자 남겨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무너질 것 같다고요? 그런데 영화 속 마크 와트니는 피 흘리는 상처를 꿰매자마자 "아무래도 x됐다"고 중얼거리며 감자를 심기 시작합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황당했습니다. 저 낙관주의가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영화적 편의인지 내내 의심하면서 봤으니까요.유쾌한 생존자, 하지만 심리묘사는 어디 갔을까마션에서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 홀로 남겨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허무합니다. 모래폭풍 속에서 안테나 파편에 맞고, 기적적으로 살아남고, 정신을 차린 직후 "나는 여기서 죽지 않을 거야"라며 씩씩하게 일어납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이 장면이 꽤 오래 머릿속에 걸렸습니다. 망연자실하거나 오열하는 장면이 단 한 컷도 없었거든요. 여기저..
솔직히 처음엔 '디즈니가 악당 기원 영화를 만든다고? 얼마나 눈에 띄겠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엠마 스톤이 입은 코스튬 하나하나가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강렬했고, 1970년대 런던 펑크록 무드가 화면 전체에 촘촘하게 깔려 있어서 보는 내내 딴 생각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1970년대 런던과 캐릭터의 배경영화 크루엘라는 1970년대 영국 런던을 무대로 합니다. 이 시기는 펑크록(Punk Rock)이 폭발적으로 유행하던 때인데, 여기서 펑크록이란 기존의 질서와 권위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음악 장르이자 문화 운동을 말합니다. 화려하고 과격한 패션, 반체제적인 메시지가 핵심이었는데, 영화는 이 무드를 크루엘라라는 캐릭터와 아주 영리하게 맞붙여 놓았습니다..
파묘가 2024년 누적 관객수 1,190만 명.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저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공포나 스릴러 장르라면 애초에 제 취향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결국 보게 됐고, 보고 나서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써 보려 합니다. 파묘 줄거리 — 풍수지리와 오컬트가 만나는 지점 영화 파묘는 미국 LA에 사는 부유한 한국계 가문에서 시작합니다. 대를 이어 원인 불명의 병이 돌고, 갓난 장손마저 위험해지자 가문 측은 거액을 들여 무당 이화림과 법사 윤봉길을 부릅니다. 여기서 법사란 경문을 읽고 의식을 집행하는 전통 종교 전문가를 뜻하는데, 영화 안에서 이도현 배우가 연기한 봉길 캐릭터가 바로 이 역할입니다. 화림이 조상의 묫자리에 문제가 있다고 직감하면서 이야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