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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일본에 젓가락만 파는 가게가 따로 있다는 걸 이번 후쿠오카 여행 전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마트 한 켠에서 파는 물건이겠거니 했는데, 막상 유후인 골목을 걷다 보니 젓가락 전문점이 세 군데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젓가락을 그릇이나 수저 세트로 함께 사는 게 당연한데, 일본은 젓가락 하나에 이렇게 큰 세계가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실감했습니다.

 

일본에 젓가락 전문점이 있는 이유, 알고 보면 문화가 달랐습니다

혹시 일본 가정에서는 젓가락을 어떻게 쓴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막연히 한국처럼 가족이 같은 수저 세트를 함께 쓰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아빠 젓가락, 엄마 젓가락, 아이 젓가락이 각각 따로 정해져 있는 개인 소장 문화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혀 있습니다. 젓가락이 단순한 주방 도구가 아니라 개인 물건에 가까운 셈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젓가락은 하시(箸)인데, 다리도 하시(橋)라고 읽힙니다. 그래서 젓가락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로 표현하는 전문점도 있고, 선물로 주고받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유후인의 젓가락 공방 하시야 이치젠(箸屋一膳)도 이런 의미를 가게 콘셉트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아오모리의 쓰가루누리(津軽塗) 젓가락처럼 지역 전통공예 기법이 젓가락에 그대로 녹아든 제품도 많습니다. 쓰가루누리란 옻칠을 수십 차례 반복해서 입히고 갈아내는 전통 도장 기법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공예 작품으로 인정받는 기술입니다. 이처럼 젓가락이 단순 식기가 아닌 공예품의 위치를 갖다 보니, 전문점이 발달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입니다.

일본 외무성의 일본 문화 소개 자료에서도 라멘·우동 전용 젓가락부터 어린이용까지 매우 세분화된 제품군이 있다고 소개할 정도입니다(출처: 일본 외무성).

젓가락 종류가 이렇게 많다고요? 직접 잡아보니 달랐습니다

여러분은 젓가락을 골라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이번 여행 전까지 젓가락에 그렇게 다양한 종류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막상 가게에 들어서니 벽 한쪽이 전부 젓가락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고, 하나하나 들어보면 무게도, 손에 잡히는 느낌도 전혀 달랐습니다.

일본 젓가락은 단면 형태만 해도 종류가 여럿입니다.

  • 원형(丸箸): 손에 부드럽게 감기는 형태
  • 사각형(四角箸): 구르지 않고 안정감이 있음
  • 오각형(五角箸): 손가락 마디에 자연스럽게 맞는 형태
  • 육각형(六角箸): 연필처럼 쥐기 편한 그립감
  • 팔각형(八角箸): 끝이 가늘고 정밀한 작업에 유리

최근에는 특히 끝이 아주 가늘고 각진 팔각형 단면 젓가락이 인기라는 이야기를 전문점 관계자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팔각형 단면이란 젓가락을 가로로 잘랐을 때 단면이 여덟 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형태로, 손에 쥐었을 때 미끄러짐이 적고 세밀한 음식도 잘 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여러 종류를 들어보니, 어떤 젓가락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깃털처럼 가볍고, 어떤 건 묵직한 나무 질감이 손에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끝부분이 약간 거칠게 처리된 젓가락은 면이나 두부처럼 미끄러운 음식이 훨씬 잘 잡힌다는 것도 실제로 확인했습니다. 이처럼 일본 전문점에서는 손 크기나 먹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맞는 젓가락을 골라주는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도쿄의 긴자 나츠노(銀座 夏野)는 3,000종 이상, 아사쿠사 타케야(浅草たけや)는 500종 이상을 취급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銀座 夏野 공식 사이트). 숫자만 봐도 얼마나 세분화된 시장인지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진짜 시선을 빼앗긴 건 젓가락 받침대였습니다

젓가락 받침대에 이렇게 빠질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사실 젓가락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소품이나 작은 인테리어 오브제를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젓가락 전문점 안을 둘러보다 갑자기 눈이 멈춘 곳이 바로 젓가락 받침대 코너였습니다.

어릴 때 종이접기로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던 학 모양, 기억하시나요? 그 학 형태 그대로 도자기로 구워낸 젓가락 받침대가 색깔별로 줄지어 있었습니다. 흰색, 연한 하늘색, 연분홍, 노란색까지 늘어선 모습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이었습니다. 동물 모양 받침대도 여럿 있었고, 젓가락과 받침대의 무늬와 색이 세트로 통일된 제품은 개별 포장까지 깔끔하게 되어 있어서 선물용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었습니다.

가격은 세트 제품 기준으로 2만 원에서 3만 원 초반까지 형성되어 있었는데, 솔직히 처음엔 젓가락 하나에 이 가격이라는 게 살짝 망설여졌습니다. 그런데 옻칠(漆塗り) 공정이 들어간 제품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옻칠이란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소재 위에 얇게 발라 굳히는 전통 도장 기법으로, 내구성과 광택이 뛰어나고 항균 효과까지 있다고 알려진 고급 처리 방식입니다. 이런 공정을 거친 제품이라면 가격이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제가 사와서 집에서 매일 꺼내 쓰기엔 솔직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물용이나 일본 여행 기념으로 진열해 두는 DP용 오브제로는 정말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유후인에서 직접 나무젓가락을 깎아 만드는 하시야 이치젠은 이름 각인 서비스, 즉 나이레(名入れ)도 운영합니다. 나이레란 구입한 제품에 원하는 이름이나 문구를 새겨 넣는 개인화 서비스로, 커플이 같은 디자인에 각자 이름을 새겨 기념품으로 만들어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각인 후 방수 코팅 처리까지 마친 완성품은 현장 즉시 수령이 아닌 1~2주 후 발송되는 방식일 수 있으니 매장에서 미리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유후인을 여행하신다면 한 번쯤 젓가락 전문점에 발을 들여보시길 권합니다. 젓가락에 관심이 없더라도 가게 안 소품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순삭됩니다. 저처럼 젓가락 받침대에 마음을 빼앗길 수도 있고, 이름을 새긴 젓가락 한 쌍이 생각보다 꽤 의미 있는 여행 기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후인 금린호 근처를 걷다가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작은 가게가 보인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참고: https://www.mofa.go.jp
https://www.e-ohash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