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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는데, 그렇다고 멍하니 있기도 싫은 밤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날에 레드 노티스를 골랐습니다. 아는 얼굴이 셋이나 포스터에 보이길래 그냥 틀었는데, 생각보다 끝까지 보게 됐습니다.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액션 코미디 영화로, 제작비 2억 달러가 투입된 작품입니다.

세 배우의 케미스트리, 그리고 영화의 구조
레드 노티스는 인터폴(INTERPOL)이 발행하는 최고 등급 국제 수배령을 제목으로 삼은 영화입니다. 여기서 인터폴 수배령이란 국제형사경찰기구가 회원국에 수배 대상자 정보를 공유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으로, 레드 노티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긴급한 등급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가 하이스트 무비 장르를 표방한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이스트 무비(Heist Movie)란 정교한 계획을 세워 귀중품을 훔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범죄 영화 장르를 말합니다. 오션스 일레븐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레드 노티스도 그 문법을 따르는데, 클레오파트라의 황금 알이라는 오브제를 중심으로 추격과 배신, 반전이 연달아 이어집니다.
주인공 세 명의 역할 분담은 꽤 명확합니다. 드웨인 존슨이 연기하는 FBI 프로파일러 존 하틀리는 영화의 중심축을 잡아주고, 라이언 레이놀즈의 도둑 놀런 부스는 시니컬한 입담으로 전체 분위기의 리듬을 조율합니다. 갤 가돗이 맡은 비숍은 팜므파탈(Femme Fatale) 캐릭터입니다. 팜므파탈이란 우아하고 치명적인 매력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여성 캐릭터를 가리키는 영화적 표현입니다. 원더우먼 이미지와는 다른 결로, 저는 갤 가돗이 이 역할에서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작품은 배우 이름값으로 보는 영화입니다. 솔직히 시나리오 자체만 놓고 보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형적인 클리셰(Cliché)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클리셰란 너무 자주 반복돼 신선함이 사라진 표현이나 설정을 뜻합니다. 탈옥 장면은 다소 허술하고, 인터폴 요원들의 수사력도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그런데도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 건 세 배우가 서로 주도권을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텐션 때문입니다.
레드 노티스가 얻은 성적도 흥미롭습니다. 공개 첫 주에 90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고, 4주 연속 넷플릭스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유지했습니다. 비평가 점수와 관객 반응의 온도 차가 컸던 작품이기도 한데, 이런 현상을 팝콘 무비(Popcorn Movie) 효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팝콘 무비란 예술적 완성도보다 오락성과 속도감에 집중해 대중적 만족감을 끌어내는 영화를 일컫습니다.
이 영화를 고를 때 참고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라이언 레이놀즈 특유의 입담과 시니컬한 유머를 좋아하는 분
- 세계 각지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로케이션 영상을 즐기는 분
- 반전이 있는 가벼운 범죄 영화를 찾고 있는 분
- 깊은 서사보다 배우 케미스트리가 중심인 오락 영화를 원하는 분
반전 구조와 실제로 본 감상
영화의 반전은 후반부에 집중돼 있습니다. 저는 처음 볼 때 별 기대 없이 틀었기 때문에, 하틀리와 비숍이 처음부터 한 팀이었다는 반전이 꽤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돌아보면 복선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처음 볼 때는 라이언 레이놀즈의 말장난에 정신이 팔려서 눈치를 못 챘습니다.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삼각 구도를 의도적으로 활용합니다.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과 순서를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초반에 하틀리 대 부스 대 비숍의 대립처럼 보이다가, 중반에 하틀리와 부스의 억지 동맹이 형성되고, 결말에서 하틀리와 비숍이 한 편이었음이 드러나는 구조입니다. 이 전환이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오락 영화로서의 리듬은 유지합니다.
엔딩도 열린 결말에 가깝습니다. 세 사람이 트리오가 되어 루브르 박물관 앞에 서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데, 속편을 염두에 둔 설계라는 게 분명히 느껴집니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2편과 3편 제작을 공식 확정했고, 2025년 현재까지 구체적인 개봉 일정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시청 트렌드를 보면, 이처럼 대형 스타 캐스팅과 글로벌 배급을 결합한 방식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발표한 자체 공개 데이터에 따르면 레드 노티스는 공개 첫 28일 기준 시청 시간 3억 6천만 시간을 넘기며 당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출처: Netflix](https://about.netflix.com)). 이는 플랫폼 오리지널 콘텐츠가 극장 개봉 없이도 얼마나 강한 흥행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영화 평론 측면에서 보면 로튼토마토(Rotten Tomatoes) 기준 평론가 점수는 39%였지만, 관객 점수는 92%에 달했습니다. 로튼토마토란 전문 비평가 리뷰와 일반 관객 평점을 각각 집계해 보여주는 영화 평점 사이트로, 두 점수 간 격차가 클 경우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지표가 됩니다([출처: Rotten Tomatoes](https://www.rottentomatoes.com)). 제가 직접 봤을 때도 관객 반응이 더 실제에 가까웠습니다. 예전에 저는 아담 샌들러의 말개그 코미디를 좋아했는데, 지금 그 자리를 라이언 레이놀즈가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별점으로는 5점 만점에 3.5점 정도입니다. 기대치를 높이면 실망할 수 있지만, 그냥 편하게 끌어놓고 보면 충분히 값을 하는 영화입니다.
레드 노티스는 명작을 보고 싶은 날보다, 그냥 머리를 비우고 싶은 날에 잘 맞습니다. 세 배우의 조합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이미 보장된 영화인데, 거기에 반전까지 붙어 있으니 킬링타임용으로는 충분합니다. 비슷한 분위기로 프리 가이나 머더 미스터리도 괜찮고, 조금 더 거친 액션을 원하면 6 언더그라운드도 추천합니다. 한 편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날, 기억해두면 좋을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