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신랑이랑 뭘 볼까 하다가 "강아지 나온다"는 말 한마디에 골랐던 영화인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거든요. 2020년 개봉작 콜 오브 와일드, 자연·모험·이별이 묘하게 섞인 영화입니다.
1890년대 알래스카, 이 영화가 펼쳐지는 무대
영화는 189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와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합니다. 감독은 크리스 샌더스이고, 원작은 잭 런던의 소설 야성의 부름입니다. 출연진은 해리슨 포드와 오마 사이, 댄 스티븐스이며, 러닝타임은 약 100분입니다. 주인공은 골든리트리버 혼혈견 벅(Buck)으로, 캘리포니아 부유한 가정에서 사랑받다가 갑작스럽게 납치되어 알래스카 썰매견으로 팔려갑니다.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저는 당연히 "주인에게 돌아가는 이야기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반려동물 소재 영화가 그런 방향이잖아요. 그래서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벅이 어떻게 집을 찾아갈지를 기대하면서 봤는데, 영화는 그 예상을 조금씩, 그리고 결정적으로 완전히 비틀어버립니다. 이게 이 영화를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배경이 되는 알래스카 설원과 숲, 강 풍경은 시각적으로 정말 압도적입니다. CG로 구현된 벅의 표정이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서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집에서 보는 힐링 영화로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아이들과 보기 좋은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모든 연령대의 가족이 보기 좋은 내용
- 동물 중심 이야기로 아이들의 집중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짐
- 자연과 모험, 성장이라는 건강한 주제
- 이별과 선택에 대해 부모와 함께 이야기 나누기 좋은 결말
특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라면 아이들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강아지의 언어를 아는 사람이 보면 두 배로 재밌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유독 몰입했던 이유가 하나 있는데, 바로 벅의 행동 묘사입니다. 저는 반려동물관리사와 사육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보니 동물의 행동 특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 제작진이 동물행동학(Ethology)을 참고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여기서 동물행동학이란 동물이 자연 상태에서 보이는 본능적 행동 양식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반려동물 훈련이나 복지 분야에서도 폭넓게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벅이 거부감이나 불편함을 표현할 때 혀로 코를 천천히 핥거나, 눈을 게슴츠레 뜨거나, 눈 깜빡임을 느리게 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이건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l)이라고 불리는 개의 스트레스 완화 신호입니다. 카밍 시그널이란 개가 자신이나 상대방의 긴장을 낮추기 위해 사용하는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으로, 눈 깜빡임, 하품, 코 핥기, 몸 긁기 등이 대표적입니다. 동물 행동을 모르는 사람이 만든 영화였다면 그냥 귀여운 표정으로만 처리됐을 텐데, 이 영화는 그 장면들을 꽤 정확하게 표현해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런 디테일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차이가 꽤 납니다. 신랑이랑 같이 보면서 제가 중간중간 "저게 강아지가 불편하다는 표현이야"라고 설명해줬더니, 신랑도 포인트를 짚어가면서 보니까 훨씬 재밌다고 했었거든요. 동물 행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를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잭 런던의 원작 소설 야성의 부름은 1903년 출판된 작품으로, 인간 문명과 야생 본능 사이의 갈등을 묵직하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2020년 영화판은 원작보다 부드럽게 각색되어 있어서 원작 특유의 거친 긴장감을 기대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영화라는 맥락에서 보면 이 정도 각색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아이들이 접근하기 훨씬 쉬운 서사가 되었으니까요.
본능이라는 단어가 결말에서 완성되는 방식
저도 처음에는 벅이 납치당한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상상이잖아요. 그런데 영화는 그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벅은 알래스카에서 썰매견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다른 개들과 합을 맞추는 것도 서툴지만 금방 적응해서 썰매 무리를 이끄는 리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 활약이 좋았는데, 또 너무 빨리 끝나버렸습니다. 우편 배달에 썰매개가 필요했던 건데, 더 효율적인 운송 수단이 생기면서 썰매견 팀이 해체되거든요. 이 장면이 저는 꽤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벅이 이제 막 자기 자리를 찾은 것 같았는데, 그 자리가 외부 환경의 변화로 사라지는 거니까요.
그 이후 벅은 흘러흘러 존 손튼(해리슨 포드)이라는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상처를 가진 두 존재가 서로를 의지하며 가족 이상의 유대감을 쌓아가는 이 부분이 영화의 가장 따뜻한 구간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영화는 또 다른 복선을 슬쩍 깔아놓습니다. 바로 벅의 혈통, 늑대와 섞인 유전적 본능입니다. 유전적 본능(Genetic Instinct)이란 후천적 학습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DNA에 새겨진 행동 성향을 말합니다. 늑대의 피가 섞인 벅이 자연 속에서 점점 야생의 감각을 되찾아가는 과정이 이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결말에서 존 손튼이 자연 속에서 생을 마감하고, 그 사건을 계기로 벅은 인간의 곁을 완전히 떠나 늑대 무리의 리더가 됩니다.
슬프지만 자유롭고 아름다운 결말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원했던 결말은 아니었는데, 벅의 입장에서 가장 최선인 결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본다면 이 결말을 두고 "이별이 슬프지만 왜 벅의 선택이 맞는 걸까?"라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됩니다. 동물 복지(Animal Welfare) 관점에서도 이 결말은 의미가 있습니다. 동물 복지란 동물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본성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개념으로, 국제수역사무국(WOAH)이 제시한 5대 자유 원칙에 근거합니다. 벅이 자신의 본능에 따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선택은 이 원칙의 핵심인 "본성에 맞는 행동을 표현할 자유"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국내 반려동물 문화에 대한 인식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반려동물 양육 가구 비율은 약 28.2%에 달합니다([출처: 농림축산식품부](https://www.mafra.go.kr)).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이미 4가구 중 1가구를 넘어섰다는 뜻인데, 그래서인지 이런 동물 중심 영화에 공감하는 분들도 그만큼 늘어난 것 같습니다. 콜 오브 와일드는 제가 아직도 신랑과 비슷한 결의 영화를 찾고 있을 만큼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단순히 귀여운 강아지 영화가 아니라, 본능과 자유, 이별과 성장을 한 편에 담아낸 이야기입니다. 주말 저녁에 가족과 함께 볼 영화를 고민 중이라면, 이 영화를 꼭 한 번 선택해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나서 아이와 나누는 대화가 생각보다 훨씬 깊어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