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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혼자 남겨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무너질 것 같다고요? 그런데 영화 속 마크 와트니는 피 흘리는 상처를 꿰매자마자 "아무래도 x됐다"고 중얼거리며 감자를 심기 시작합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황당했습니다. 저 낙관주의가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영화적 편의인지 내내 의심하면서 봤으니까요.

유쾌한 생존자, 하지만 심리묘사는 어디 갔을까
마션에서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 홀로 남겨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허무합니다. 모래폭풍 속에서 안테나 파편에 맞고, 기적적으로 살아남고, 정신을 차린 직후 "나는 여기서 죽지 않을 거야"라며 씩씩하게 일어납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이 장면이 꽤 오래 머릿속에 걸렸습니다. 망연자실하거나 오열하는 장면이 단 한 컷도 없었거든요.
여기저기서 이미 지적된 부분이긴 합니다만,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캐릭터의 심리적 붕괴나 고독감이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다만 중반부에 NASA가 자신의 생존 사실을 동료들에게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와트니가 보이는 반응에서 조금은 인간적인 균열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게 그나마 벌충이 됐다고 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아무래도 x됐다"는 대사 하나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낸다고 생각합니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절박한, 그 아슬아슬한 유머가 마션의 매력이니까요.
과학적으로 보자면, 와트니가 감자 농사를 짓기 위해 활용한 방법은 꽤 정교합니다. 화성 토양에 인분을 섞어 박테리아를 살린 뒤 비료로 활용하고, 로켓 연료인 하이드라진(N₂H₄)에서 수소를 추출해 산소와 결합시켜 물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하이드라진이란 로켓 추진제로 사용되는 무색의 액체 화합물로, 분해 시 수소와 질소가 발생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위험천만한 화학 실험 장면은 NASA의 실제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 실제로 NASA 행성과학부 책임자 제임스 그린이 이 영화에 과학 자문으로 참여했습니다([출처: NASA](https://www.nasa.gov)).
세월호가 자꾸 겹쳤던 이유
중반부부터 저는 화면에 집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영화 속 NASA가 보급선을 쏘아 올리고, 중국 국가항천국(CNSA)이 타이양선 부스터 로켓을 제공하겠다고 나서고, 전 세계가 한 사람의 귀환을 위해 움직이는 장면들이 이어질수록 자꾸 다른 기억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세월호였습니다. 컨트롤 타워 없이 우왕좌왕하던 사고 초기 대응, 해경 해체, 그리고 인양비용이 많이 든다며 가슴에 묻으라던 말들. 연간 국가예산 350조가 넘는 나라에서 한 생명을 건지는 데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영화 속 NASA의 모습과 너무 극명하게 대비됐습니다. 제가 직접 느꼈던 그 박탈감은 지금 써도 여전히 씁쓸합니다.
한국판 마션 포스터에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라고 적혀 있는데, 미국판에는 'Bring Him Home'이라고 나옵니다. 표현 하나가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돌아갈 것이다'가 아니라 '우리가 그를 데려오겠다'는 주어의 차이, 그 차이가 저는 꽤 크게 느껴졌습니다.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개개인의 목소리가 모여 한 생명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위성 사진 분석가 민디 파크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보고하지 않았더라면, 천체역학자 리치 퍼넬이 중력 도움(Gravity Assist) 기동을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와트니는 구조되지 못했을 겁니다. 여기서 중력 도움 기동이란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탐사선의 속도와 궤도를 바꾸는 기술로, 연료를 추가로 사용하지 않고도 우주선의 진로를 대폭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 계획 덕분에 헤르메스호는 지구로 귀환하는 대신 화성으로 다시 향할 수 있었습니다.
화성을 찍은 곳이 요르단이라는 것, 그리고 중국의 위상
영화를 보고 나서 궁금한 게 하나 생겼습니다. 화성처럼 보이는 그 황량하고 광활한 배경이 실제로는 어디일까요? 찾아봤더니 요르단의 와디 럼(Wadi Rum) 사막이었습니다. 와디 럼은 붉은 사암과 화강암 지형이 펼쳐진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된 지역입니다. 그랜드 캐년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었는데, 여기도 버킷리스트에 추가됐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결심이 영화 한 편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중국의 역할도 흥미롭게 봤습니다. 미국이 자국 우주인을 자력으로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CNSA가 나서며 "이건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다"라고 말하는 장면, 제 눈에는 영화 제작자들이 중국을 G2로 인정하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처럼 읽혔습니다. 세계 공조라는 포장 안에 담긴 시선이랄까요. 개인적으로는 마냥 훈훈하게만 받아들이기엔 좀 복잡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는 과학적 사실주의(Scientific Realism)를 얼마나 충실히 구현했느냐입니다. 과학적 사실주의란 허구의 서사 안에서 실제 과학 원리와 물리 법칙을 최대한 정확하게 반영하는 창작 태도를 뜻합니다. 로튼토마토 기준 91%의 신선도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영화 개봉 당시 실제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꽤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션에 등장하는 랑데부(Rendezvous)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랑데부란 두 우주선이 우주 공간에서 서로의 위치와 속도를 맞춰 접근하는 기술로, 조금이라도 계산이 틀리면 영원히 스쳐 지나가게 됩니다. 마크가 우주복에 구멍을 내어 분출되는 공기를 추진력으로 사용하는 장면은 물리적으로는 다소 과장됐지만, 그 절박함만큼은 화면에서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정리하면, 마션은 한 편의 생존 교과서이면서 동시에 국가가 개인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묻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화면에 대한 감탄과, 그 감탄이 가능한 나라가 부럽다는 씁쓸함. 만약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그냥 SF 액션으로만 보지 말고 '이 나라라면 나를 구하러 올까'라는 질문을 하나 품고 보시기를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