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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전시 끝나고 친구랑 보러 가기로 했는데 약속이 틀어졌습니다. 그 뒤로 "언젠가 보겠지" 하다가 결국 제모 예약에 시간이 딱 맞아 혼자 보고 왔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영화관이 있어서 미룬 변명조차 못 하겠더군요. 주토피아1을 거의 원탑으로 꼽을 만큼 좋아했던 저로서는, 9년 만에 나온 속편이 반갑기도 하면서 솔직히 걱정도 적지 않았습니다.

9년의 기다림 끝에 확인한 세계관 확장의 결과
주토피아1이 개봉했던 2016년 당시, 이 작품은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10억 달러(약 1조 3천억 원)를 넘기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사상 손꼽히는 흥행작으로 자리잡았습니다([출처: Box Office Mojo](https://www.boxofficemojo.com)). 그러니 후속작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2편은 그 부담을 어느 정도 소화해냈다는 인상입니다. 제작진이 밝힌 방식 중 인상 깊었던 건 엔딩 퍼스트(Ending First) 방식입니다. 엔딩 퍼스트란 결말을 먼저 확정한 뒤 그 결말에 도달하기 위한 스크립트를 역방향으로 써 내려가는 시나리오 구성 기법입니다. 이 방식 덕분인지 전체 서사가 무너지지 않고 구조적으로 버텨줍니다.
기술적인 부분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은 무려 67종으로, 각 종의 실제 보행 패턴과 신체 특성을 개별적으로 애니메이팅했습니다. 여기서 애니메이팅이란 각 동물의 골격 구조와 근육 움직임까지 고려해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하는 작업입니다. 10년 전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3D 렌더링 기술 덕분에 모피 질감이나 수면 표현 같은 세부 묘사 완성도가 크게 높아졌고, 화면을 보면서 그게 눈에 들어올 정도입니다.
세계관 확장 측면도 짚어볼 만합니다. 1편이 포유류 중심의 육식·초식 갈등 구도를 다뤘다면, 2편은 파충류라는 완전히 다른 동물군을 주토피아 사회에 편입시키며 이 세계가 단순한 이분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게리 더 스네이크(Gary the Snake)의 성우로 동양계 배우 키 호이 콴이 캐스팅된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파충류가 혐오의 대상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관객 누구도 게리를 빌런으로 확신하지 못하는 구조, 이게 이 영화가 사회적 편견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2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이스터에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닉의 집 주소 1923은 디즈니 설립연도와 동일
- 라따뚜이, 라푼젤, 로빈 훗 오마주 장면 등장
- 습지마켓 배경에 인어공주 애리얼·후크선장 관련 간판 삽입
- 클로하우저가 입력하는 비밀번호를 해석하면 "Part 3 is for real & Birds are too(3편은 진짜로 나온다, 그리고 새도 나온다)"
- 닉의 집 위층 소품들이 상하이 디즈니랜드 테마존에서 참고한 요소
쿠키 영상은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간 뒤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깃털이 나오는 장면으로 3편 복선을 암시하는데, 위 비밀번호 이스터에그와 연결해서 보면 소름이 돋을 만큼 치밀하게 설계된 복선입니다.
기대가 클수록 아쉬움도 크다 — 갈등 서사의 빈틈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쉬움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재미없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닌데, 하필 가장 중요한 갈등 서사 파트에서 빈틈이 느껴졌습니다. 주디가 너무 독단적이었습니다. 닉은 계속 주디를 걱정하고 따라가는데, 주디는 둘이 떨어진 뒤에도 사건 해결에만 집중하며 새 캐릭터들과 어울리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저는 보면서 닉이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정받고 싶다는 주디의 동기는 이해하지만, 그게 파트너를 향한 감정 표현보다 우선순위에 놓이는 방식이 계속 걸렸습니다.
1편의 갈등 서사와 비교하면 차이가 명확합니다. 1편에서는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캐릭터가 사건을 겪으며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서사 곡선이 뚜렷하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주디가 닉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고, 죄책감 속에 실의에 빠졌다가, 홍당무 펜 녹음기라는 소품을 매개로 진심 어린 화해에 이르는 구조가 그렇습니다. 서사를 뒷받침하는 오브제와 타이밍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었죠. 2편에서는 그 화해 파트가 대사로만 빠르게 처리됩니다. 둘이 마주 서서 할 말을 쭉 주고받다가 끝나는 방식인데, 감정적 여운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결론이 나오니 "그래서?" 싶은 느낌이 남습니다. 모티프(Motif), 즉 서사 속에서 반복 등장하며 감정적 의미를 강화하는 상징적 요소의 활용이 1편에 비해 약하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빌런 구조도 아쉬운 지점입니다. 흑막이 있다는 건 초반부터 예상이 가능했고, 포버트의 반전이 공개되는 순간 깜빡이도 없이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1편의 벨웨더 반전이 복선을 충분히 깔아놓은 뒤 터졌다면, 이번엔 개연성이 다소 성긴 채로 전환이 이뤄졌습니다. 그게 아쉬운 이유는 포버트 캐릭터 자체의 설정이 나쁘지 않아서입니다. 가문 내에서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구조는 주디의 서사와 대조되어 읽힐 수 있는데, 그 연결이 충분히 밀도 있게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세계관의 외연을 넓히는 방식, 조연 캐릭터들의 재치, 엔딩 크레딧의 연출은 충분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말 시장이 닉주디 때문에 시장이 세 번 바뀔 뻔한 위기를 어떻게든 버텨내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났습니다. 디즈니가 꾸준히 관통하는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메시지도 이번엔 파충류라는 새로운 외집단(Out-group)을 통해 한 층 더 확장되었습니다. 외집단이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가리키는 사회심리학 용어로, 혐오와 배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할 때 쓰입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https://www.koreanpsychology.or.kr)).
1편이 5점 만점에 5점이라면, 2편은 3.5점 정도입니다. 재미는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긴 영화입니다. 결국 이 아쉬움이 오히려 3편에 대한 기대로 이어집니다. 이스터에그와 쿠키 영상을 보면 제작진이 3편을 이미 의식하고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2편은 9년이 걸렸는데, 이번엔 제발 5년 안에 나왔으면 합니다. 솔직히 그 이상 기다리다가는 노안으로 자막이 안 보이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아직 2편도 2회차를 할지 고민 중이기는 한데, 파충류 다음엔 어떤 동물군이 등장할지는 궁금해서 극장에 또 가게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