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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엔 '디즈니가 악당 기원 영화를 만든다고? 얼마나 눈에 띄겠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엠마 스톤이 입은 코스튬 하나하나가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강렬했고, 1970년대 런던 펑크록 무드가 화면 전체에 촘촘하게 깔려 있어서 보는 내내 딴 생각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1970년대 런던과 캐릭터의 배경
영화 크루엘라는 1970년대 영국 런던을 무대로 합니다. 이 시기는 펑크록(Punk Rock)이 폭발적으로 유행하던 때인데, 여기서 펑크록이란 기존의 질서와 권위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음악 장르이자 문화 운동을 말합니다. 화려하고 과격한 패션, 반체제적인 메시지가 핵심이었는데, 영화는 이 무드를 크루엘라라는 캐릭터와 아주 영리하게 맞붙여 놓았습니다.
제가 영화 전에 원작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을 찾아봤을 때, 크루엘라 드 빌은 키가 크고 과장된 흰 머리카락 때문에 솔직히 좀 우스꽝스러운 인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원작 악당 캐릭터를 실사화하면 어딘가 어색해진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이번 크루엘라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엠마 스톤이 흑백 반반의 머리와 강렬한 눈빛으로 화면을 장악하는 순간, 원작의 어색함은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 단계, 즉 본격 촬영 이전의 기획·준비 과정에서 의상 디자인에만 수개월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의상 수는 무려 47벌에 달하며, 이 중 일부는 실제 패션 하우스에서 제작 협력을 받을 만큼 공을 들인 작품들입니다.
엠마 스톤 vs 엠마 톰슨, 그리고 OST의 힘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OST를 빠뜨리는 건 반쪽짜리 후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그냥 올드팝 몇 곡 쓰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제가 직접 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다이에제틱 사운드(Diegetic Sound)와 논다이에제틱 사운드(Non-diegetic Sound)를 영리하게 섞어가며 장면의 감정선을 끌어올리는데, 여기서 다이에제틱 사운드란 극 중 등장인물도 들을 수 있는 현실 속 소리를 말하고, 논다이에제틱 사운드란 관객에게만 들리는 배경음악 같은 소리를 뜻합니다. Connie Francis의 Who's Sorry Now, Nancy Sinatra의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 The Rolling Stones의 She's a Rainbow까지, 곡들이 장면의 감정과 맞아 떨어지는 순간마다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일반적으로 빌런(Villain) 캐릭터는 단편적으로 묘사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에스텔라와 크루엘라라는 두 정체성이 교차하면서 캐릭터에 입체감이 생겼습니다. 빌런이란 서사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역을 뜻하는데, 크루엘라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상처와 복수심이 뒤섞인 안티 히어로(Anti-hero)에 가깝습니다. 안티 히어로란 전통적인 영웅의 덕목은 없지만 독자나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주인공 유형을 가리킵니다.
엠마 톰슨이 연기한 남작부인(Baroness)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와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비교 자체가 좀 억지라고 느꼈습니다. 미란다가 냉혹한 완벽주의자라면, 남작부인은 살인도 서슴지 않는 진짜 위협적인 존재였거든요. 두 엠마가 화면에서 맞붙는 장면들은 보는 내내 손에 땀이 났습니다.
크루엘라의 관람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엠마 스톤의 47벌 코스튬과 변신 연기
- 1970년대 펑크록 히트곡을 활용한 OST 구성
- 남작부인과의 심리적 대결 구도
- 쿠키 영상에서 101마리 달마시안으로 이어지는 복선
- 에스텔라와 크루엘라, 두 정체성의 교차
영화진흥위원회(KOBIS)에 따르면 영화 크루엘라는 국내 개봉 당시 디즈니 실사 영화 중 손꼽히는 관객 반응을 기록했으며, 특히 20~30대 여성 관람객의 재관람 비율이 높았습니다.
12세 등급의 아쉬움과 실제 관람 후 판단
제가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이게 12세 등급이라고?' 크루엘라가 복수를 완성하는 후반부 30분은 심박수가 올라갈 만큼 강렬했는데, 12세 관람가(Rating: 12) 등급 때문에 자극의 수위가 한 꺼풀 걷어진 느낌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관람가 등급이란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연령별 적합성을 심사하여 부여하는 기준으로, 12세 등급은 폭력·선정성 표현에 상당한 제약이 따릅니다. 15세였다면 남작부인과의 대결 장면이 훨씬 날 것 그대로였을 텐데, 그 아쉬움은 솔직히 지금도 남습니다.
그리고 엔딩에서 크루엘라가 헬먼 홀의 간판 가운데 글자를 빼 '헬 홀(Hell Hall)'로 바꾸고 검은 차를 몰고 입성하는 장면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컷이었습니다. 말이 필요 없는 장면이었는데, 그 짧은 순간에 이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가 전부 담겨 있었습니다.
영화 크루엘라는 연출, 연기, 음악, 의상 중 어느 하나도 허투루 넘어가는 게 없는 작품입니다. 디즈니 영화니까 가볍게 보겠지 하고 들어갔다가는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패션이나 음악에 관심이 있거나,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좋아하신다면 현재 디즈니플러스에서 스트리밍 중이니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