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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소니가 K팝 소재로 만든 히어로물이겠지' 싶어서 넘겼는데, 결국 부산국제영화제 싱어롱 회차를 예매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올해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넷플릭스 최초 3억 뷰를 돌파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걸까요?

넷플릭스 3억 뷰, 이 숫자가 말해주는 것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2025년 6월 20일 넷플릭스 전 세계 동시 공개 이후 역대 통합 조회수 1위를 기록했습니다. OST인 'Golden'은 빌보드 핫 100(Billboard Hot 100) 차트에서 애니메이션 OST 사상 단독 최다인 8주 연속 1위에 올랐습니다. 여기서 빌보드 핫 100이란 미국 내 스트리밍, 라디오 방송, 음원 판매량을 종합해 매주 발표하는 싱글 차트로, 팝 음악 시장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순위 지표입니다([출처: Billboard](https://www.billboard.com)). 제작사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만든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화려한 비주얼의 히어로물로만 봤는데, 실제로 보면 전혀 다른 장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 영화의 중심은 퇴마 액션이 아니라 루미와 진우 두 캐릭터의 로맨스와 성장 서사입니다.

 

서사 구조 측면에서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간과 악령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루미의 정체성 혼란이, 미국 내 이민자 1.5세대 혹은 2세대가 느끼는 감정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 400년 전 조선시대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빌런 진우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이용당한 피해자의 면모를 보여 감정 이입을 유도합니다.
  • OST 'Golden'을 부른 이재가 10년 넘는 SM 연습생 생활 끝에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는 사실이, 루미 캐릭터의 서사와 겹쳐지며 곡의 감동을 배가시킵니다.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은 서울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캐나다로 이민했습니다. 그는 드림웍스에서 쿵푸팬더3, 가디언즈 등의 스토리 아티스트를 거쳐 이 작품으로 장편 감독 데뷔를 했습니다. 스토리 아티스트(Story Artist)란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장면의 흐름, 카메라 구도, 캐릭터 동선을 그림 콘티로 구현하는 직군을 말합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이 영화는 남산 서울타워, 기와집, 조선시대 민화 작호도에서 영감을 받은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까지, 한국 문화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서사 언어로 사용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가장 놀랐습니다. 외국에서 만든 작품인데, 왜 이렇게 한국 사람인 제가 봐도 이질감이 없을까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 밤이 깊어가지만'과 듀스의 '나를 돌아봐'가 삽입된 장면에서는 제가 더 반응했을 정도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싱어롱, 그날의 현장

'누가 부국제까지 가서 케데헌을 봐?'라고 생각한 게 바로 저였습니다. 그런데 예매 당일 새로고침을 반복한 끝에 스페셜 싱어롱 회차를 잡고 있었습니다.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에 도착했을 때, 부국제 현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돌 콘서트 대기 현장 같은 분위기에 순간 '내가 와선 안 될 곳에 왔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싱어롱(Sing-Along)이란 영화 상영 중 화면 하단에 자막과 함께 노래 가사를 표시해 관객이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도록 기획된 특수 상영 방식입니다. 미국에서 제한 상영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싱어롱 버전이 한국에선 이번 부국제에서 딱 한 차례 공식 상영된 것이었습니다. 불이 꺼지고 첫 곡 'How It's Done'이 흐를 때만 해도 관객들은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Soda Pop'이 울려 퍼지는 순간, 사자보이즈를 맞이하는 환호가 터져 나오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말 그대로 혼문이 열렸다는 표현이 딱 맞았습니다. 저도 처음엔 어색하게 앉아만 있었는데, 어느새 물을 마셔가며 'Free'를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객석 전체가 합창단이 된 그 순간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응원봉까지 준비해 온 관객들이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온 아버지 분들의 환호성이 극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수십 회의 영화제 관람을 해온 저에게도 처음 경험하는 에너지였습니다. GV(Guest Visit, 배우나 감독이 직접 상영 후 관객과 대화하는 행사)에서는 매기 강 감독이 꼬마 팬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는 예상치 못한 현장이 펼쳐졌습니다. "진우는 왜 죽였냐"는 질문에 "마지막에 원하는 걸 다 받으면 이상할 것 같았다"는 통쾌한 답변을 건넸고, 퇴장 직전에는 한 꼬마 팬의 요청에 'Takedown'을 무반주로 처음부터 후렴까지 완창해 관객 전체의 환호를 이끌어냈습니다. 그 장면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었던 특별한 무대였습니다.

 

넷플릭스가 자체 공개한 시청 데이터에 따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공개 이후 수주 만에 전 세계 비영어권 콘텐츠 차트 상위권에 지속적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출처: Netflix Tudum](https://www.netflix.com/tudum)). 결국 이 영화가 남기는 건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 무언가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며 살아가는 루미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조이와 미라 캐릭터가 충분히 서사를 받지 못한 점, 루미 부모님의 에피소드가 빠진 점은 확실히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 여백이 오히려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하면 싱어롱 회차로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집에서 혼자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