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파묘가 2024년 누적 관객수 1,190만 명.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저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공포나 스릴러 장르라면 애초에 제 취향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결국 보게 됐고, 보고 나서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써 보려 합니다.

파묘 줄거리 — 풍수지리와 오컬트가 만나는 지점
영화 파묘는 미국 LA에 사는 부유한 한국계 가문에서 시작합니다. 대를 이어 원인 불명의 병이 돌고, 갓난 장손마저 위험해지자 가문 측은 거액을 들여 무당 이화림과 법사 윤봉길을 부릅니다. 여기서 법사란 경문을 읽고 의식을 집행하는 전통 종교 전문가를 뜻하는데, 영화 안에서 이도현 배우가 연기한 봉길 캐릭터가 바로 이 역할입니다.
화림이 조상의 묫자리에 문제가 있다고 직감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풍수사(風水師) 김상덕과 장의사 고영근이 합류하고, 강원도 깊은 산속 이른바 악지(惡地)에 자리한 묘의 파묘가 결정됩니다. 여기서 악지란 풍수지리 용어로, 땅의 기운이 나빠 사람이 묻혀서는 안 되는 자리를 가리킵니다.
파묘 과정에서 관 안에 든 시신은 부패가 전혀 없는 상태였고, 뚜껑에는 온갖 부적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화장이 폭우로 연기되는 사이 관이 저절로 열리고, 그 안에서 일본의 악령 오니 다이묘(鬼大名)가 튀어나옵니다. 오니 다이묘란 일본 민간 신앙에서 전해지는 귀신의 한 형태로, 영화에서는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의 민족적 정기를 억누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봉인된 존재로 등장합니다.
상덕이 땅을 다시 파보자 첩장(疊葬)이 드러납니다. 첩장이란 하나의 묘 아래 또 다른 관을 몰래 묻어두는 방식을 말하는데, 그 안에는 일제강점기 친일파 박근현의 시신이 있었고 그 위에 오니가 봉인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일제가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보고 그 허리인 태백산맥에 쇠말뚝을 박아 맥(脈)을 끊으려 했다는 설정인데, 영화는 이 역사적 상처를 오컬트 서사의 중심축으로 가져옵니다.
파묘에서 주목할 만한 서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전반부: 저주받은 묘를 둘러싼 미스터리와 파묘 과정
- 중반부: 오니 다이묘 등장이라는 충격적 반전
- 후반부: 일제 쇠말뚝 제거와 태백산맥 맥 회복이라는 역사적 결말
2024년 파묘는 제7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습니다. 포럼 부문이란 베를린영화제의 독립 프로그램 섹션으로, 상업성보다 실험성과 예술성을 중심으로 작품을 선정하는 곳입니다. 천만 관객 오락영화가 이 섹션에 초청된 것 자체가 작품의 깊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람 후기 — 공포물 못 보는 제가 끝까지 눈 뗄 수 없었던 이유
저는 피가 나오거나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라면 기본적으로 피해왔습니다. 공포 그 자체보다 스플래터(splatter) 연출이 싫었던 건데, 스플래터란 고어한 신체 훼손 장면을 과장되게 묘사하는 영상 기법을 뜻합니다. 파묘도 그런 이유로 오랫동안 관심 밖에 있었는데, 이 영화에 처음 호기심이 생긴 건 감독 인터뷰 한 토막 때문이었습니다.
장재현 감독이 이도현 배우를 캐스팅할 당시 정말 아무도 모르는 신인이길 원했는데, 촬영과 개봉 사이 이도현 배우가 더 글로리를 비롯한 여러 작품으로 대중에게 이미 잘 알려진 배우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에피소드가 왠지 머릿속에 걸렸습니다.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같은 무게감 있는 배우들 사이에서 이도현 배우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그게 제가 처음으로 파묘를 보고 싶어진 이유였습니다.
결국 친구의 진심 어린 강추까지 더해져 마음이 기울었고, 얼마 전 한림의 작은영화관이라는 곳에서 예기치 않게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보는 영화관이었는데 가격이 놀랄 만큼 저렴해서, 앞으로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여기 스케줄부터 먼저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가 시작 전, 제작사 로고가 나오는 구간에서 소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처음 가본 영화관이다 보니 음향 오류인가 싶어 살짝 불안했는데, 파묘라는 제목이 소리와 함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움찔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침묵도 연출의 일부였습니다. 그때부터 134분, 단 한 번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공포 장르를 기피하는 분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끔찍한 장면이 쏟아지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제주에서 자라며 어릴 때 굿 현장을 직접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무속 의식 장면들이 낯설기보다는 오히려 익숙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또 다른 시선으로 봤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그 장면들이 과장되지 않고 꽤 사실적으로 그려졌다고 느꼈습니다.
결말에 대해서는 스포를 최소화하겠지만, 사이다 결말이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그 상황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이화림을 지켜주는 할머니 영혼이 등장하는 설정처럼 오랜 세월 죽은 이를 위해 일해 온 사람들 곁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함께한다는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선택한 논리이고, 저는 그 논리가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4년 기준 한국 영화 관객수 1위를 기록한 파묘는 현재 넷플릭스를 포함해 티빙, 애플TV 등 여러 OTT 플랫폼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파묘는 2024년 한국 개봉 영화 중 최다 관객을 동원한 작품으로 공식 집계되어 있습니다.
아직 파묘를 보지 않은 분이라면, 공포 영화라는 선입견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보시길 권합니다. 무서운 게 싫어서 못 보는 저도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던 영화였으니까요. 보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 여운이 남는 종류의 영화입니다. 그게 명작의 조건이라면, 파묘는 그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