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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MCU를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습니다. 썬더볼츠*부터 보기 시작한 입장이라, 이번 영화도 별 기대 없이 '판4데이' 할인 이벤트에 끌려 4천 원짜리 표를 덥썩 끊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오니 "잘 봤다"와 "뭔가 아쉽다"가 동시에 드는 묘한 영화였습니다.

레트로 퓨처리즘이 만들어낸 비주얼, 실제로 어떤가

일반적으로 마블 영화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배경을 갖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번 작품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1960년대 지구-828이라는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레트로 퓨처리즘(Retro-Futurism) 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여기서 레트로 퓨처리즘이란 과거 시대의 사람들이 상상했던 미래의 모습을 시각화한 미학으로, 60년대 우주 시대의 낙관주의와 기술에 대한 동경이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를 냅니다.

 

제가 직접 보고 가장 놀란 건 이 미학이 단순히 배경 장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타이포그래피, 의상, 건축물의 디테일, 우주선 디자인까지 프로덕션 디자인(Production Design) 전반에 일관성 있게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프로덕션 디자인이란 영화의 시각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미술 부문 전체를 총괄하는 작업으로, 관객이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적 신뢰도를 만드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 부분만큼은 기존 MCU 영화들과 차별화된 정체성을 확실히 갖추었다고 느꼈습니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이클 지아치노 음악감독이 참여했는데, 이 분은 '업', '더 배트맨',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의 정서를 음악으로 완성시키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온 인물입니다.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이라는 측면에서, 즉 다양한 악기를 조합해 영화의 감정선을 설계하는 방식에서 이번에도 음악 자체는 충분히 훌륭했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가 감동을 억지로 쥐어짜려 하는 지점에서 음악과 장면 사이의 온도 차가 생겼고, 그게 오히려 몰입을 방해했습니다. 각본의 밀도가 음악의 에너지를 따라가지 못한 느낌이랄까요.

 

이 영화에서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60년대 레트로 퓨처리즘 기반의 일관된 프로덕션 디자인
  • 마이클 지아치노 특유의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이는 음악
  • 실버 서퍼(줄리아 가너)의 추격 시퀀스와 개성 있는 엔딩 크레딧 디자인
  • MCU 사전 지식 없이도 독립적으로 진입 가능한 서사 구조

 

영화 산업 측면에서 보면, 마블 스튜디오는 MCU 페이즈 4·5를 거치며 관객 피로도 문제를 꾸준히 지적받아왔습니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시장 포화 현상은 북미 박스오피스 데이터에서도 확인되는 추세로, 2023년 이후 마블 단독 작품들의 흥행 성적이 전반적으로 낮아진 것이 사실입니다([출처: Box Office Mojo](https://www.boxofficemojo.com)). 그런 맥락에서 이번 작품이 시각적 정체성을 새로 잡으려 한 시도 자체는 유효했다고 봅니다.

 

갤럭투스와 MCU 페이즈 6, 기대와 현실 사이

이번 작품에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갤럭투스(Galactus)는 행성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우주적 존재입니다. 코믹스 원작에서 갤럭투스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우주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필요악적 개념으로 그려지는, 이른바 코즈믹 엔티티(Cosmic Entity)입니다. 코즈믹 엔티티란 선과 악의 이분법 밖에 존재하는 우주적 차원의 절대 존재를 뜻하는 개념으로, 기존 지구 단위 빌런들과는 위협의 스케일 자체가 다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엄청난 규모의 존재가 스크린 위에서 실제로 주는 위협감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중성자별을 배경으로 한 우주 전투 시퀀스는 IMAX 화면에서 시각적 스펙터클을 충분히 보여줬지만, 정작 "저 존재를 어떻게 이기지?"라는 긴장감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이기는지 보자"는 편안한 관람 모드로 전환되어버렸습니다. 수 스톰이 갤럭투스를 압도하는 장면에서는 솔직히 빌런의 존재감이 무색해지는 순간도 있었고요.

 

전개 방식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대중 반응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지나치게 도식적이었는데, 한 장면에서 일제히 분노하던 군중이 다음 장면에서 아무 설명 없이 평화롭게 바뀌는 식의 편의적 서사가 반복되었습니다. 이런 패턴은 캐릭터 몰입도를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극적 긴장감이 쌓이기 직전에 자꾸 환기가 되어버리는 구조랄까요. 제 경험상 이런 전개는 주인공이 아무리 위기에 처해도 "어차피 잘 되겠지"라는 안전망 인식을 관객에게 심어줍니다. 반면 쿠키 영상에서 등장하는 닥터 둠과 '어벤져스: 둠스데이' 자막은 확실한 흥미를 자아냈습니다. 닥터 둠은 마블 코믹스에서 판타스틱 4의 최대 숙적이자 지구 최고의 두뇌로 꼽히는 캐릭터로, MCU 페이즈 6의 메인 빌런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블 스튜디오는 2026년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 둠스데이를 통해 멀티버스 사가(Multiverse Saga)의 클라이맥스를 준비하고 있으며, 판타스틱 4는 그 교두보 역할을 맡은 작품입니다. 멀티버스 사가란 서로 다른 평행 우주를 연결하는 거대한 서사 축으로, MCU 페이즈 4부터 이어진 세계관 확장의 핵심 프레임입니다([출처: Marvel Entertainment 공식 사이트](https://www.marvel.com)).

 

마지막으로 가장 인간적인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엔딩의 카시트 설치 장면입니다. 우주적 위협을 막아낸 최강의 히어로들이 카시트 하나를 제대로 못 끼우며 쩔쩔매는 모습은,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백 퍼센트 공감할 장면이었습니다. 리드 리처즈가 몸을 자유자재로 늘리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카시트 앞에서 무력해지는 그 장면,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사람 냄새 난다"고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마블의 확실한 시각적 리셋이자 새로운 패밀리의 소개라는 역할은 해냈습니다. 다만 각본의 긴장감 설계에서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입니다. MCU를 전혀 모르는 분도, 오랫동안 마블을 봐온 팬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어벤져스: 둠스데이가 궁금해졌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한 셈입니다.